나는 89학번입니다.
93년도에 대학졸업과 동시에 영천 3사관학교서 위탁교육을 받고 학사 21기로
임관하고 이어서 김해 공병학교에서 공병장교로서 필요한 전기/전술을 연마하고
야전 실무부대는 그 해 11월 중순에 35사단 공병대대 1중대 소대장에 보직
되었습니다.
아시는분들은 알고 있겠지만 그 당시 공병소대장들의 체력은 제가 생각해도
어마무시 했습니다.
사관학교에서 기른 체력도 무시못할 수준이었지만 공병학교에서
소대장으로서 소대원들을 이끌어가기 위한 강한체력 훈련은 끝판왕을 체험한듯
했습니다.
아침점호는 기본적으로 4km의 알통구보를 합니다.
장교중대 막사에서 장교식당이나 모든 훈련교장을 갈때는 무조건 구보로 갑니다.
심지어 막사 건너편 PX를 갈때도 구보...이발하러 갈때도 구보...
연병장 한쪽에는 아예 "강자존"..."3보이상구보"라고 돌에다 새겨놨기까지 했고요.
일조점호후 식사하러 장교식당을 갈때도 당연히 구보로 가고요...
식사후 구보로 복귀하면 배가 꺼진 느낌이었습니다.
공병의 훈련내용은 다른 병과도 위험하지만 더 위험한것들 투성이 입니다.
폭약을 다루고 지뢰와 철조망,,,강을 도하 하는 보트강습훈련, 부교나 문교훈련,
장간조립교등의 훈련은 그 위험성이 매우 높고 강한 집중력과 강제적 근육 강화가
자연스레 되는 훈련 투성이 입니다.
한마디로 뭘하든 어디를 가든 뛰어서 뭔가를 들고 이동해야 했습니다.
진짜 군대가면 철든다는 말이 딱 공병에게 들어맞는 말인듯 합니다.
그렇게 일과를 보내고 식사후 막사에 복귀하면 하루를 마감하는 무장 산악구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장 산악구보가 끝나야 개인시간을 가질수 있었습니다.
무장 산악구보는 군장을 FM대로 사고 방독면에 대검까지 착용하고 총은 앞에총
자세로 뛰는데 그 코스가 산에서 산으로 쭉 이어지는 길입니다.
산을 뛰어 올라갈때 대체로 다 경사지 지만 너무 가팔라 숨이 끊어질듯 힘들다는
급경사길이 두개가 있었습니다.
첫번째 급경사는 할딱고개입니다...숨을 할딱거린다고 붙인 이름이지요.
그 다음 나타나는 경사길은 꼴딱고개라고 불렀습니다.
숨이 할딱이는 정도가 아니라 꼴딱 넘어간다고 해서 붙인 이름입니다.
장교막사를 출발해서 고개를 뛰어 오르고 또다른 능선을 넘는 코스가 대략 12km
정도이고 그 날 인솔하는 훈육장교의 기분 상태에 따라 몇키로 더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웃긴건 어디 70년대 배달의 기수에나 나올법한 완전히 구형군장을 쌌다는 겁니다.
작은 배낭에 의류와 전투화등을 쑤셔넣고 바깥쪽 위아래에 모포 두장을 둘둘말아
결착하고 또 그 위에 반합과 야전삽을 매달고..
완전히 2차대전 미군 모습과 비슷한...ㅎㅎㅎ
그런데 그런 구형 군장이 의도했는지는 모르지만 몸에 착 붙는게 나중에 지급받은
신형군장이 오히려 불편하기만 했습니다.
뛰는것도 힘든데 왜 그리 군가는 시키고 머가 맘에 안든는지 오리걸음에...ㅎㅎ
그렇게 급경사를 완전무장하고 앞에 총자세로 뛰어 오르다 보면 너무 힘들어서
별별 생각이 다 들게 마련입니다.
그냥 쓰러져 버릴가? 아님 능선 밑으로 굴러버릴까?...ㅎ
그래도 장교라는 명예와 자존심에 낙오는 없다는 생각으로 끝끼지 버티며,
혹시나 힘겨워하는 동기가 있으면 밀어주고 끌어주고 대부분 완주했습니다.
무장산악구보 12km를 한시간안에 주파한다면 일반사람들은 못믿을겁니다.
공병학교 입교후 두달이 지난 시점에 산악구보 측정을 하는데 진자 거짓말처럼
한시간안에 모두 주파하고도 힘이 남아서 축구를 하던가 족구를 하던가 그도
아니면 개인 체력단련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게 군대니까 가능하고 집단적 췌면이 걸리면 가능합니다.
그 때 동기들이 가끔은 보고 싶기도, 어디서 뭐하면 사는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그렇게 힘든 하루를 보내고나서 밤이되고 일석점호까지 끝나면........
거의 매일이다시피 밤마다 부대 담을 넘는 일종의 탈영을 감행합니다.
김해시내에서 먹는 소주와 야식은 지금생각해도 짜릿하고 만났습니다.
물론 다시 담을 넘어 복귀하면 기다리는 훈육장교들의 구타와 기합이
기다리지만, 그게 대수입니까?....ㅎㅎ
다음날 또 담넘어가서 마시고...또 얻어맞고 구르고...ㅎㅎㅎ
담넘는 곳에 훈육장교들이 매복하고 있다가 곧바로 붙잡혀서 죽도록
맞기도 하고요...
훈육장교는 중위...우린 신참 소위...때리면 맞아야지요...ㅎㅎ
지금은 악습이고 당연히 진작에 없어져야 할 구타이지만,
그 당시 그 곳에선 버젓이 비일비재 했습니다.
그래도 훈육장교와 소위들로 이루어진 교육장교들간에 먼가 모르는
통하는것이 있었습니다.
그들도 우리같은 시절엔 담을 넘어서 술마시고...ㅎㅎ
때리면 맞고 또 몰래 나가서 한잔 마시는 일종의 그 시절의 낭만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디 부러지거나 죽을만큼 무지막지하게 때리거나 기합을 주지는 않고
적당히 한 두어시간 빵빠레하다 끝나곤 했습니다.
동기들중 담을 안넘고 바른생활만 하는 동기들에겐 무척 미안했지요..
빵빠레는 연대책임이니 그들은 규졍을 지켰슴에도 같이 맞고 구르고...ㅎ
우리들도 미안한 마음에 가끔은 담넘어 복귀할때 통닭이나 소주등을 돌리면서
미안한 마음을 대신하곤 했습니다.
지금은 100m만 뛰어도 숨이차는 배불둑이 중년아재가 되었지만
그 때 빛나는 청춘의 시절에 푸른 군복이 곧 내 수의가 되어 국가에 절대 충성하며
죽음으로 조국을 지킨다는 굳은 신념과 의지가 충만한 젊은 청년장교
시절이었습니다.....ㅎㅎ